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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 (1999)Movie/Review 2024. 9. 15. 23:53
정지우 감독, 전도연, 최민식 주연의 [해피 엔드]를 봤다. 첫 장편을 연출하는 감독의 노출 많은 불륜녀 이야기. 25년 전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전도연 배우 입장에선 굉장히 위험한 도전이었다. 심지어 네 번째 영화 출연작인데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 그녀의 전성기 시절 작품을 볼 때마다 직업 정신에 감탄하게 된다. 세 주인공은 저마다 못난 구석이 참 많다. 취직은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맨날 서점에 가있는 남편, 실질적인 가장이지만 가정은 등한시하는 불륜녀, 그리고 그런 불륜녀에게 집착하고 선을 넘는 내연남까지. 그런데 그들이 밉지만은 않고 각자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남편이 저러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 '계속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남편이 딱하다', '계속 여지를 줘서 애달픈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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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Movie/Review 2024. 9. 13. 23:41
소피아 코폴라 감독, 빌 머레이,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봤다.원치 않게 도쿄에 방문한 외로운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일본을 배경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오롯이 영상으로 담아냈다. 연출, 촬영, 각본, 연기 등의 모든 요소가 두 남녀의 고독과 소외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만의 아이덴티티가 뚜렷해서 좋다. 다른 서양권의 나라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런 감성이 생기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극의 주인공인 밥과 샬롯은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밥은 가정이 있는 중년 남성 영화배우다. 많은 중년 남성이 그렇듯 가정에서 존재감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광고 촬영 때문에 도쿄를 방문해서 문화에 도통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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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퀄라이저 (The Equalizer, 2014)Movie/Review 2024. 9. 13. 18:15
안톤 후쿠아 감독,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더 이퀄라이저]를 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덴젤 워싱턴의 작품. 최근 10년 정도는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아서 그의 연기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찾아보니 1년 전에 1995년에 개봉했던 [크림슨 타이드]를 본 게 마지막이다. 묵직하고 진중한 캐릭터인 로버트 맥콜은 덴젤 워싱턴의 이미지에 꼭 맞는 배역이다. 약자에게 사려깊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한 주인공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사실 각본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는데 덴젤 워싱턴의 연기가 이 캐릭터와 잘 어우러져 3편까지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다만 주인공이 슈퍼맨 뺨치는 바른 생활 사나이인데다 스토리 전개도 정적이고 예측 가능해서 다소 지루한 감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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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맨 (The Fall Guy, 2024)Movie/Review 2024. 9. 3. 16:14
데이빗 리치 감독, 라이언 고슬링,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스턴트맨]을 봤다.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방영된 리 메이저스 주연의 TV 드라마 '더 폴 가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리 메이저스는 촬영 비하인드 영상 이후에 경찰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스턴트맨을 위한 헌정작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감독도 스턴트맨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데이빗 리치 감독이다. 다양한 액션 영화 레퍼런스가 많아서 시네필이라면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나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유명한 액션 영화 장면을 다 기억하면서 살지는 않아서 공감이 많이 가지는 않았다. 각본 자체는 평이한 편이라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관객층이 다소 얇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 흥행 성적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 1억 2500만 달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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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 1950)Movie/Review 2024. 9. 1. 23:22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를 봤다.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도 자주 거론되는 작품. 잊혀진 무성 영화 여배우와 실패한 각본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옛날 영화라 지금과 연기 방식은 좀 다르고 내레이션이 많은 편이지만 몰입감은 충분했다. 흑백 영화이지만 워낙 흡입력이 좋아서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화질이 더 좋았다면 컬러 영화를 본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용이 참 기괴하면서도 재밌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늙은 여배우, 여배우와 같이 일했던 감독이자 전남편인 집사, 정상인 척하지만 편안한 삶에 취해 여배우에게 빌붙어 사는 삼류 각본가. 이러한 독창적인 각본과 배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서 정말 좋았다. 특히 주인공이 계단을 내려가며 광기에 찬 눈으로 연기를 하는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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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로물루스 (Alien: Romulus, 2024)Movie/Review 2024. 8. 19. 21:38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봤다. 1편에서 20년 후를 배경으로 한 속편 아닌 속편. 45살 먹은 시리즈여서 그런지 스타워즈처럼 속편 사이사이에 이야기를 끼워 넣는 게 전략인가 보다. 몰랐는데 [프로메테우스] 이전 시기를 다룬 TV 시리즈인 [에이리언: 어스]도 제작 중이라고 한다. 정사로 취급하는 게임도 여러 개 있다. [맨 인 더 다크] 등의 한정된 공간을 소재로 한 공포 스릴러를 연출한 감독답게 우주선을 소재로 한 공포에 집중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1편이 추구했던 외계인 소재의 호러물을 계승한 셈이다. 프리퀄 2부작은 에이리언 시리즈를 봐야 했지만 이 작품은 1편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덕분에 진입장벽을 낮추고 시리즈의 수명을 늘리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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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토크쇼 (Late Night With the Devil, 2023)Movie/Review 2024. 8. 16. 23:44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주연의 공포 영화인 [악마와의 토크쇼]를 봤다. 70년대 미국 토크쇼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 컨셉을 잡은 특이한 작품. 악마 빙의를 소재로 한 호러 영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시청률 1위를 위해 악마 숭배 의식을 치른 게 발단이 되었다는 메인 스토리가 있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인물 간의 대화와 장면들을 통해 유추해야 하는 형식이라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나쁘게 말하면 불친절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레트로 스타일의 호러 연출이 독특해서 인상적이었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악마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어가는 느낌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최대 출력으로 빙의하면서 다 죽여버리고 결말로 넘어가서 아쉬웠다. 15세치고는 꽤나 고어해서 선을 잘 잡았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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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칙스 (White Chicks, 2004)Movie/Review 2024. 8. 9. 19:53
웨이언스 형제가 제작한 코미디 영화인 [화이트 칙스]를 봤다. 주연 배우가 숀, 말론 웨이언스, 감독이 키넌 웨이언스라고 해서 누구지 싶었는데 웨이언스 패밀리는 미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쇼 비즈니스 가족이라고 한다. 부모는 슈퍼마켓 매니저와 사회복지사인데 자식들이 배우, 작가, 코미디언이 많다니 신기하다. 자식이 총 12명이라고 한다. FBI 요원인 흑인 남자 2명이 백인 여자로 분장해서 언더커버 수사(?)를 하는 내용이다. 성별, 인종, 성 정체성, 기득권, 대중문화 등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쉼 없이 풍자한다. 20년이 지난 요즘 같은 시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영화다. 감독이 선견지명이 있다. 러닝타임 내내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는 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별로 그렇진 않았다. 몇 번 피식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