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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2023)Movie/Review 2024. 11. 9. 16:07반응형
셀린 송 감독, 그레타 리, 유태오 주연의 [패스트 라이브즈]를 봤다.
극작가 출신인 셀린 송의 감독 데뷔작. 먼저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셀린 송은 [넘버 3]를 연출하고 이후 캐나다로 이민 간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주인공 노라도 셀린 송처럼 캐나다 이민자 출신인 극작가인 데다 남편도 각본가이다. 감독 개인의 삶이 굉장히 많이 투영된 캐릭터인 셈이다.
영화는 2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나영을 향한 그리움이 여전한 태영, 태영과는 인연이 아니었다는 단호한 노라, 잠꼬대로 표현된 노라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없어 외로워하는 아서라는 세 사람의 삼각관계와 인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영은 태영과의 어릴 적 만남이 전생, 즉 패스트 라이브즈라며 선을 긋는 반면 아서는 그저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만나 결혼하게 된 자신과 만나는 건 너무 따분한 삶이라고 얘기한다. 내 입장에선 이민 가서 외국 사람이랑 사랑에 빠진 이야기가 훨씬 특별해 보이는데 아서는 정반대로 느끼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노라가 아서를 떠나 태영을 만나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마일드하고 현실적인 결말로 마무리 짓는다. 덕분에 인상적인 장면이 정말 많았다. 러닝타임 내내 단호함을 유지했지만 끝끝내 감정을 참지 못하고 아서의 품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노라의 모습이 아련하고 먹먹해서 좋았고, 10대엔 노벨상, 20대엔 퓰리쳐상, 30대엔 토니상을 받고 싶다는 노라를 보며 인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후련한 얼굴로 뉴욕을 떠나는 태영의 마지막도 좋았고, 우버를 기다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로를 빤히 바라보는 장면도 좋았다. [라라랜드]의 Korean American 버전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셀린 송의 각본은 Korean American의 정체성이 가득하다. '당근' 같은 10대 때 익힌 한국말과 이민 이후에 배운 영어 번역체스러운 어색한 한국어를 섞어 쓰는 노라의 대사가 참 인상적이다. 노라가 'so Korean'이라고 하는 해성이 오히려 한국 남자스럽지 않다는 일부 한국인들의 평이 있는데 그것 또한 Korean American의 정체성이 느껴져 재밌었다. 굳이 한국스러움을 따지고 들 필요가 있나 싶다.
북미에 몇 년 정도 살아본 경험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지 않나 싶다. 한국과 미국 사이 그 어딘가에서 여러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이 가득 담겨 있는 영화다. 셀린 송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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