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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 (Icarus, 2017)Movie/Review 2017. 10. 6. 12:30반응형
러시아 도핑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카루스]를 봤다.
영화 제작자이자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인 브라이언 포겔은 도핑의 실태를 밝히기 위해 스스로 기니피그가 되어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으면서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실험을 도와주는 이는 러시아 반도핑기구의 연구소장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브라이언은 왜 그렇게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도와주는지 알지 못한다.
실험을 진행하던 중 도핑 스캔들이 수면 위로 오르게 되고,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그 사실을 폭로하기로 결정하면서 다큐멘터리의 방향이 180도 바뀐다. 제작진으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행운이었을 것이다. 실태를 재현하는 수준에서 폭로의 중심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흘렀을지 궁금했다. 방향을 바꾸기 전에 목표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계획이었는지 알려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리고리가 왜 브라이언을 도왔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러닝타임을 짧게 유지하기 위해 실험 관련 내용을 줄였거나 혹은 촬영 중에 밝힐 수 없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좀 아쉽다. 차라리 그 부분을 더 줄이고 폭로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올림픽, 월드컵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었다. 선수들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온갖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사회에서 애국심은 자연스레 소멸되었고 국가의 위상에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스포츠로 국가의 위상이 높여질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착각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일부 종목과 스타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스포츠 경기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줄어드는걸 보면, 비단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결과가 정해져있다면 누가 경기를 보고 싶어할까. 이 작품에서는 러시아를 타겟으로 했지만 다른 국가들은 이러한 시도를 전혀 안했을까? 초반부에 나온 것처럼 브라이언은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호르몬을 투약했다. 그리고 아마추어 대회는 테스트조차 하지 않는 장면도 있었다. 가관인 것은, 그리고리가 제출한 모든 증거가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러시아는 평창 올림픽도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스포츠 경기를 볼 이유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리 로드첸코프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조지 오웰의 [1984]이고 책의 인용구가 작품 내에서 여러 번 사용된다. 러시아의 시간은 1984년에 멈춰있고 언제 다시 흐를지 짐작조차 안된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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