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2020)
찰리 카우프만이 제작, 연출, 각본을 모두 맡은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봤다.
[아노말리사] 이후 7년 만에 보는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 [존 말코비치 되기]와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이 워낙 인상적이었어서 그가 참여한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는 것 같다.
영화는 만난 지 7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남자의 부모님을 뵈러 로드 트립을 떠나는 두 남녀를 비추며 시작한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좀 이상하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여자는 속으로 계속 헤어지고 싶어 한다. 눈보라를 뚫고 드디어 그의 부모님의 집에 도착했는데 그의 부모님은 더 이상하다. 어딘가 모르게 나사 빠진 듯한 모습이다. 중간중간 전혀 관련 없는 학교 청소부인 아저씨가 등장하는데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점점 더 기괴하게 흐른다. 그의 부모님은 노년의 모습으로 나오다가 다음 신에서 갑자기 중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장소에서 뒤섞이지만 여자는 좀체 눈치채지 못한다. 친구로부터 계속 전화가 오지만 받으면 의문의 남성이 중얼거릴 뿐이다.
중반부까지 보면서 자기만족을 위해 자신 주변의 모든 이의 기억 혹은 시간을 조작할 수 있는 남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공포 스릴러 스타일로 전개되리라 예상했다. 감독의 예전 각본은 보통 현실에 없는 능력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꽤 참신하고 볼만한 스릴러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후반부까지 이 작품을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러닝타임도 134분으로 긴 편이라 너무 지루했다. 남자가 청소부와 동일 인물이라는 건 깨달았지만 그 외에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집중해서 봤다면 해석에 성공했을지 모르겠으나 그 정도로 재밌지도 않았다.
장문의 해석글을 다 읽어보고 나서야 두 남녀의 이야기는 과학자를 꿈꿨지만 부모님 병간호에 한평생을 바쳐 결혼도 못한 노년의 청소부의 망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회한을 떨쳐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꽤나 깊이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꼬아놓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해석글을 쓴 사람마저도 두 번을 본 모양이다. 돌이켜 보면 [아노말리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큰 차별점이었다. 이 작품은 관객을 잡아끄는 매력이 부족하다.
찰리 카우프만의 연출작을 두 편 봤는데 두 편 모두 실패했다. 다음엔 걸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