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Review

기생충 (2019)

Joonki 2019. 6. 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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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봉준호 감독 작품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없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옥자]를 봤지만 작품성에 감탄을 해본 적은 없다. 이 작품도 칸 영화제 수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극장에 가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왜 봉준호 감독 작품이 별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그의 메시지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항상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소시민의 투쟁을 그려왔다. 딸을 구하려는 힘없는 가족, 열차의 꼬리칸에서 살고 있는 불만에 가득 찬 무리들, 그리고 반려동물을 지키려는 소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항상 희망적이었다. 주인공들은 투쟁 속에서 많은걸 잃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최소한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강두는 세주를 구해냈고, 요나와 티미는 열차를 탈출했으며, 미자는 옥자를 지켜냈다.

 

나는 그 긍정적인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처럼 희망적이지 않다. 대다수의 소시민은 소시민으로 남고, 부자는 쌓아 올린 부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부의 격차는 커져만 가고 부를 쟁취하기 위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는 판타지 영화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마치 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생충]은 다르다. 주인공 가족은 계급 간의 차이를 순응한 채 어떻게든 기생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쏟는다. 이를 탐내는 다른 무리와는 타협 없이 죽기 살기로 싸운다. 이전 작품들과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 리뷰 영상에서는 이 작품을 '봉준호 감독의 항복 선언문'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 끝은 희망적이지 않았다. 기택을 마침내 구해낸 기우의 모습은 상상에 불과하고, 반지하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을 뿐이다. 열린 결말인 건 맞지만 기우의 미래가 뻔히 그려졌다.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체제를 전복하지 못한 채 기생에 전념해야 할 뿐 바뀌는 것은 없다.

 

이 작품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연출, 각본, 연기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메타포가 굉장히 많아서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전문가의 해석을 읽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코미디에서 서스펜스로 장르가 전환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감탄하기도 했다. 박소담 배우와 이정은 배우의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타인의 가치관 변화를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생각과 철학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좋았다. 차기작은 어떨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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