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
[더 랍스터], [송곳니]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를 봤다.
!!! 스포일러 조심 !!!
'불쾌한 쾌감'. 이 작품에 대한 송경원 기자의 평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감히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본인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인다. 이번에는 아가멤논의 트로이 출정 과정에서 큰딸 이피게네이아가 제물로 바쳐지게 된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브로 재구성했다.
대중 영화였다면 설정 자체만으로는 스릴러 형식의 복수극이었겠지만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신 또는 악마의 복수를 당하는 인간은 그 또한 절대자가 되고, 유약한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두 절대자에게 한없이 비굴해진다. 이를 비추는 장면들은 부조리하게 느껴지지만, 곱씹어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누구를 죽일지에 대한 선택을 포기한다. 이는 절대자이기를 포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그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을까. 스티븐은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쉽게도 작품을 보기 전까지 신화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대신 성경에 나오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빗대어 봤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결심이 신성한 행위로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이와 같은 모습이 펼쳐졌을 수도 있겠다.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불안과 불편을 표현할 때마다 음악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용한다. 이는 오히려 작품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거부감이 들지 않게 된다. 아니면 내가 이미 감독의 연출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계기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독창적이면서도 라스 폰트리에 감독보다는 더 친절해서 마음에 든다. 또한, 너무 날 것 그대로였던 [송곳니]와 비교하면 훨씬 더 정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이 드디어 적절한 수준을 찾지 않았나 싶다.
[킬링 디어]는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고, 부조리하면서도 현실적인 작품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경이롭고 훌륭하지만 절대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불편함의 미학'이라는 말은 이 작품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어구인 듯하다.
오늘부터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팬이 되었다.
★★★★☆